이미지 확대/축소가 가능합니다.

닫기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로 돌아가자
요한복음산책 시리즈 첫 번째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에서는 요한복음 1장부터 4장까지, 두 번째「비참과 자비의 만남」에서는 요한복음 5장부터 8장 11절까지 다룬 데 이어 이번에 발간된 세 번째「생명의 빛이 가슴 가득히」에서는 요한복음 8장 12절부터 12장 50절까지를 다루고 있다.

8장 12절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12장 46절에서도 예수님은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생명의 빛이 가슴 가득히’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독자들 가운데 어렵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면 빛이신 주님 품에 안겨 따스한 온기와 밝은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아가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10,10)고 하신 예수님의 바람대로 모두의 삶에 생명의 빛이 넘치도록 가득하기를 바란다. 삶의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 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인디언의 우화다. 해가 어둠이 무엇인지를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자, 친구인 별이 해를 데리고 캄캄한 동굴로 들어갔다. 그런데 해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동굴 속 어둠이 사라졌다. 해가 있는 곳에는 어둠이 존재할 수 없다.

태양은 빛과 온기가 있어
사람에게 밝음과 따스함을 주지만
인간은 언제든지 태양을 피하여
어둠과 추위에 머물 수 있다.
인간이 추위와 어둠을 맛보게 된다면
그것은 태양 탓이 아니라
태양을 피한 인간 탓이다.
태양은 언제나 변함없이 인간을 비추고 있으니
결코 태양 탓이 될 수 없다.
인간이 태양을 피해 어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듯,
하느님의 생명을 마다하고
죽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은
태양처럼 변함없이 퍼져 나오기에
인간이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따스함과 밝음을 누릴 수 있다.
- 존 포웰John Powell, SJ.

책 속으로
‘어둠 속을 걷지 않는다’는 말은 ‘빛 속에서 걷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빛 속을 걸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왜 그럴까? 빛이 없으면 생명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의 빛이신 주님의 현존 안에서 무상으로 받은 영혼의 일조권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순례 여정이 끝나는 그날까지 우리는 쉼 없이 그 빛 속을 걸어가야 한다.  26쪽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하지만 세상의 죄를 치워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세례로 우리의 옛 죄를 없애시고, 우리가 믿음살이를 하면서 지은 죄까지도 고해성사를 통하여 모두 용서해주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죄인이다.  35쪽

우리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말씀 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분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 수 있는가? 먼저 성경에서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매일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날의 삶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45쪽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마음을 주님께 고정시켜야 한다. 마음의 닻을 주님께 내리는 것이다. 빈 깡통은 어린아이가 밟아도 쉽게 찌그러지지만, 모래로 가득 채우면 천하장사가 밟아도 찌그러지지 않는다. 우리가 주님 말씀에 머무르고 그 말씀으로 우리 내면이 충만해지면 사람들의 말 때문에 마음이 요동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58-59쪽

오늘날 참으로 모호하고 제멋대로 규정된 진리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진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진리란 철학이나 과학 같은 여러 학문에서 말하는 진리와 다르다. 우리에게 진리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인은 참 진리이신 예수님과 일치하여 생명과 희망, 의미가 가득 찬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66쪽

예수님은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려고 두 팔 벌려 우리를 초대하신다. 우리가 그분의 초대에 응답할 때 그분과 우리 사이는 강한 끈으로 연결된다. 누구도,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끈이다. 그분께서는 절대로 그 끈을 놓지 않으며 끈을 거둬들이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 편에서 그 끈을 놓게 되면 그 순간부터 생명의 삶을 살 수 없다.          75쪽

‘성숙한 신앙’과 ‘익숙한 신앙’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더욱 굳건한 믿음을 보이는 사람은 성숙한 신앙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신앙생활에만 익숙해지는 사람은 익숙한 신앙인이다. 익숙함을 성숙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118쪽

하늘나라 건설에서 최전방에 있는 이들은 평신도들이다. 평신도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이란 신분을 드러내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복음을 전해야 한다.  147쪽

잠시 멈추어 서서 무엇이 우리의 영적 눈을 흐리게 하는지 성찰해 보자. 돈과 건강 문제, 관계 회복에만 집중하느라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권력과 쾌락, 세상적인 것에 집중하느라 영적인 눈이 흐려진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158쪽

누군가 넘치는 은총을 눈앞에 두고도 영적으로 메말라 있다면, 그것은 그의 게으름과 완고함, 교만 때문이거나 세상 유혹에 빠져 하느님의 초대에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184쪽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이 꼭 박해나 전쟁의 위험 속에서 순교하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목자는 날마다 삶 안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 생명을 바치도록 예수님께 부름 받은 존재다.  194쪽

평소에도 우리는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사는지 살펴야 한다. 우리가 시선을 두는 곳에 따라 우리 인생의 끝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 처지에서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어야 한다.  248쪽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의 그릇 크기에 따라 생명이 충만한 삶을 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햇살은 모든 방을 비추지만, 북쪽으로 난 방은 비추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가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믿음살이를 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고 적게 받을 수도 있다.  266-267쪽

하느님은 우리와 똑같이 고통스러워 하실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동반자가 되어 고통의 길을 함께 가며 힘을 주신다. 사실 고통의 터널을 지나갈 때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절대로 우리를 터널 속 어둠 한가운데 홀로 버려두시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한다.  378쪽


머리글

1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요한 8,12-59)
들어가는 글/ 1.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2. 위에서 오신 예수님/ 3. 진리이신 예수님/
4. 아브라함 이전부터 계셨던 예수님/ 나가는 글

2부 태생 소경의 치유(요한 9,1-41)
들어가는 글/ 1. 태생 소경의 치유/ 2. 태생 소경과 이웃 사람들/ 3. 종교 법정에서의 심문
4. 태생 소경의 신앙 고백과 경배/ 5. 눈 뜬 소경 바리사이들/ 나가는 글

3부 성부와 하나이신 성자(요한 10,1-42)
들어가는 글/ 1. 양들의 문이신 예수님/ 2. 착한 목자 예수님/ 3. 목자의 탈을 쓴 삯꾼/
4. 성부와 하나이신 성자

4부 라자로의 소생 기적(요한 11,1-57)
들어가는 글/ 1. 라자로의 죽음/ 2. 라자로의 소생/ 3. 유다 지도자들의 반응/ 나가는 글
 
5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요한 12,1-50)
들어가는 글/ 1. 마리아가 예수께 향유를 부어드림/ 2. 예루살렘 입성/ 3. 그리스 사람들이 방문과 예수님의 마지막 공정 가르침/
4. 막간幕間
 
마무리 글/ 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