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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영적 목마름을
해결할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더 많이, 더 자주 마음의 공허함을 이야기한다. 마음으로부터 차오르는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이 각자 느끼는 행복은 다르겠지만 『이 시대 성자에게 행복을 묻다』의 주인공들이 신앙인으로 보여 준 삶에는 하나같이 내면이 환해지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행복의 기준을 돌아보고 다시 한번 새롭게 내 삶의 방향성을 잡아보면 어떨까.

마더 데레사, 토마스 머튼, 아베 피에르, 김수환, 헨리 나웬, 오스카 로메로, 에디트 슈타인, 오상의 성 비오, 샤를 드 푸코…….

『이 시대 성자에게 행복을 묻다』에는 레지스탕스로, 국회의원으로, 넝마주이로, 세계적 영웅으로, 현대 철학의 일선에 서 있던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이름 없는 수도자로, 다양한 신분을 넘나들며 거침없는 사랑의 삶을 살았던 영성가 13인의 삶이 담겨 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가지고자 하는 지위나 명예 같은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았던 그들 삶을 정성들여 읽고 나면 무지개처럼 아련하게만 보이던 행복이 소설 속의 파랑새처럼 바로 지금, 여기에 있음을, 그래서 내 현재의 삶이 더 절절하게 감사하며 사랑하게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천의 글]
『이 시대 성자에게 행복을 묻다』에 담긴 이 시대의 영성가들의 삶은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시들지 않는 꽃으로 읽는 이의 가슴에 안겨 와 감동을 줍니다.
하나같이 하느님과 이웃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만 큼 많은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아름다운 사람들, 영성의 맑음과 높이와 깊이로 세월이 갈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들!
어떤 경우에도 이기적인 안일함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이타적인 고통의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새로운 빛과 힘을 얻으며 하느님이 우선적인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갈망을 지닙니다. 은총의 섭리와 굳건한 신앙 안에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혜와 용기를 배웁니다.
오늘도 더 넓고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재촉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싶은 열망으로 내면이 환해지는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이 한 권의 책을 정성들여 다 읽고 나면 우리도 현재의 삶을 더 절절하게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순례의 영성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 성자에게행복을 묻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우리도 또 하나의 성자가 되어 다른 이를 행복으로 인도하고 싶은 영적 갈망을 품게 되는 은총에 더불어 행복해집니다.
- 이해인(수녀, 시인)

[책속에서]

피에르 신부의 절박한 호소는 방송된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프랑스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로비는 이미 옷가지와 담요, 음식들로 거대한 창고처럼 변해 버렸고 한쪽에서는 보석과 돈을 들고 온 사람들이 이룬 긴 줄로 말할 수 없이 혼잡했다. 그들은 모두 피에르 신부의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그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약 한 시간 뒤부터는 호텔 일대의 교통이 마비되었다. 관할지역의 전화국은 폭주하는 업무를 감당하기 어렵자 지방의 직원들을 임시로 동원했다. 그날 밤 호텔로 모여든 자원봉사자 수천여 명과 자원봉사 차량 500대가 밤새 거리를 수색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구해 성당, 수도원, 학교, 체육관 등에 자발적으로 세워진 약 50개의 구조센터로 이송했다.

이 역사적인 자선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을 때 파리의 신문들은 의기양양하게 이런 기사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간밤에 파리에서는 바깥에서 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 전에도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감동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어젯밤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 아베 피에르, p89-90


그가 양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 모두, 끝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목자일 수 있는 건 바로 양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9일 기도 메시지’는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인간을 위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었다. 그것이 가난하고 병들고 죄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침내 목숨까지 십자가에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다.”

- 김수환, p110


그가 말년에 사용했던 호 ‘일속자’는 말 그대로 ‘좁쌀 한 알’이라는 뜻이다. 어느 시사주간지 기자가 그에게 왜 이처럼 가벼운 호를 사용하는지 물었을 때, 너털웃음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 이 호가 내 마음을 지긋이 눌러주는 화두가 되어 주지. 세상에 제일 하잘것없는 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르는 거지.” 이런 철저한 겸손의 자세는 어느 날 갑자기 얻어진 깨달음이나 교과서를 통해 학습된 것은 아닌 듯하다. 철저히 이타적 삶을 살았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 이렇게 3대에 걸친 가풍의 소중한 열매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끔 장일순의 기억 속에서 만나게 되는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은 늘 검소하고 겸손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곡식 한 알이라도 땅에 떨어지면 그릇에 주워 담아 모았다. 거지에게 적선을 할 때도 반드시 두 손으로 드리도록 했다. 그러기에 그의 집은 늘 식객들로 붐볐다. 한번은, 돈을 꿔간 이웃이 약속한 날이 훨씬 지나도 돈을 갚지 않자 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그 이웃을 찾아가서 빚을 갚으라고 하겠다며 물었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히 ‘가지 마라.’였다.

- 장일순, p221-222


테이야르의 사상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론적인 진화 해석이다. 우주 진화의 모든 과정이 일정한 정점을 향해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고 그 정점이 바로 ‘오메가 포인트’라고 불리는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만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며 그리스도는 진화의 원동력이자, 최종 수렴점이요 목표인 셈이다. 그는 이 ‘진화’라는 현상에 ‘창조’라는 측면을 여백으로 남겨 놓았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마법의 지팡이를 든 요술쟁이처럼 당신의 창조 과업을 지금 눈에 보이는 상태처럼 ‘뚝딱!’ 하고 완결시킨 것이 아니라 만물의 최종 완성을 위한 창조 과정에 끊임없이 개입하시고, 작용하시는 분으로 보았던 것이다. 테이야르는 그런 하느님의 모습을 이런 말로 표현한다. “하느님은 농부들의 호미 끝에, 학생들의 펜 끝에, 광부들의 곡괭이 자루에, 밥 짓는 여인들의 젖은 손 끝에 계심을 기억하라.” 이는 신약 성경에 언급된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하고’(콜로 1,17),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6)라는 구절의 의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테이야르 드 샤르댕, p248-249


그가 고독 속에 성체를 응시했던 은수처는 엉망진창이 된 채 편지지와 공책들이 어수선하게 나뒹굴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샤를 드 푸코의 생애는 완전한 실패였다. 푸코는 유언을 남길 틈도, 들어줄 사람도 없었으며 아무도 그의 죽음을 알지 못한 가운데 외롭게 최후를 맞았다. 그는 단 한 권의 영적 저술도 남기지 못했고, 어떤 종교적 모임도 꾸리지 못했을뿐더러, 그를 따르겠다는 추종자 한 사람 얻지 못했다. 심지어는 개종자 한 사람도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 많은 이가 그를 20세기의 주목 받는 영성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푸코가 사후에 갖게 된 이런 호소력은 전적으로 그가 남긴 잡다한 메모와 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기록의 편린들을 통해 그가 개척한 업적, 즉 새로운 종교적 삶의 모델을 발견했다. 철저한 자아포기와 완전한 비움으로 제련된 신성한 지혜가 세상에 드러나는 데는 굳이 많은 단어들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 예수의 샤를 드 푸코, p29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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