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도 어려운데, 사랑도 제대로 하라고요?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일 것이다. 직장이나 모임에서 만나는 이들뿐만 아니라 이웃, 친구끼리도 생각이나 마음이 달라 사사건건 부딪히고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러한 갈등과 충돌은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당연히 존재하게 마련이다. 과연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사랑은 제대로 된 것일까?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살면서 직접 겪었거나 알게 된 사랑에 관한 다양한 체험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바로 이런 사랑 때문에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담고 있다.
사랑? 사랑이 대체 뭐죠? 어떤게 사랑이죠?
사실 ‘사랑’만큼 모든 것이면서도, 무엇이라 명확하게 정의하기 힘든 개념도 없다. 사전에 기재된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여럿이고, 그 각각의 정의가 포함하는 사랑의 범위는 훨씬 더 넓다. ‘상대방과 서로 그리워하거나 끌리는 마음’도 사랑이지만,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이도 있을 수 있지만, 떡볶이를 너무나도 사랑할 수 있다.
“All or Nothing.”이라는 말처럼, 사랑은 모든 것이면서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 심지어 악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나, 사랑이 없다면 그 혹은 그것은 나의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며, 또한 사랑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관계가 빠진 사랑은 폭력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잡하고, 다양하며, 보이지 않는 사랑은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연인, 친구, 가족, 세상과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과연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일까?
일상 속 이야기로 말하는 내 안의 숨은 사랑 찾기!
저자인 김효준 신부는 자신의 삶에서 직접 체험했거나 알게 된 사랑의 경험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그가 소개하는 사랑은 때로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주인공 소년의 것처럼 순박하지만 애처롭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의 주인공 ‘태일’처럼 투박하면서도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은 연애의 감정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고 예쁜 엽서에 대한 갈망으로, 때로는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실과, 전철에서 마주친 기억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미안함으로도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 사실, 사랑은 이미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사람들의 일상이, 그들을 에워싼 사회와 환경에 더께가 져 그 사랑이 가려져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상의 숱한 이야기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또 그 사랑을 공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불확실의 시대를 사는 나를 위한 ‘사랑학개론’
“썸”,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단어이지만, 처음 그 말이 등장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면서도 그 ‘썸’을 타고 싶어 했다. 사랑이라 하기에는 의무나 제약이 많을 것 같으니, 상대에게 생긴 호감을 ‘썸’이라 표현하면서 사랑이 불러올지 모르는 아픔과 상처를 회피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냥 ‘썸’만 타는 관계야.”라는 말은 ‘좋아하지만, 혹시나 생길 수도 있는 상처는 받고 싶지 않아’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적당히 사랑하면서 좋은 것만을 원하는 마음은 때로는 이렇게 우리를 사랑에서 멀어지게 한다.
“적당히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 없는 사랑의 말이다. 사랑에는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온 정신으로, 온 힘으로 하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16p, 당신을 사랑해요, 단, 적당히만요).
‘썸’과 사랑의 차이는 이것에서 온다. ‘썸’은 예감이지만, 사랑은 확신이다.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에 온 마음과 영혼, 정신과 힘을 다해서 해야 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멀리하기에 사랑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 힘과 용기가 되어 주던가?
무수한 진단과 참견보다 ‘괜찮아’라는 그 한 마디
“괜찮아”라는 말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을 받게 된다. 몇 년 전 출판 시장에 광풍을 일으켰던 수많은 명사들의 청춘을 향한 진단과 선언들, 이미 청춘이 지나버린 이들이 오늘의 현실을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던진 “괜찮아”는 이미 그 시기가 지나 버린, 이제는 안정된 지위에 오른 이들이 보내는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든 거 아냐. 그거 지나고 보면 별일도 아니더라.”와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괜찮아, 네 사랑이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는 진정한 의미의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어쩔 수 없음의 괜찮음이 아닌, 자전거를 배우다 넘어진 친구에게 “괜찮아, 그래도 어제보단 더 멀리 왔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격려와 희망의 괜찮음이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다는 표현의 앞에는 ‘잠시’라는 한정이 붙어 있다. 그 잠시는 사람에 따라,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시 곧 제 길을 찾을 것이기에 위로와 응원을 전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랑을 말하는 것, 그 사랑이 향하는 것
사랑은 무언가를 향한 헌신과 인내 그리고 기대와 희망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 모습에서 신앙은 곧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다. 세상을 향한 사랑이나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때로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사랑과 신앙 둘 다 상대를 위해 헌신하고, 인내하면서도 그 사랑의 반향을 기대하고 영원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에 대해 아는 것은 사랑에 대해 아는 것이기도 하다. 요한의 첫째 서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주변의 이웃, 더 나아가 세상을 미워할 수는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동시에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