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이치와 오묘한 뜻으로 눈과 마음을 깨우다”
서양의 천주교와 동양의 유학이 만나 탄생한 인생 수양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서학 열풍을 일으킨 《칠극》을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번역과 해설로 만난다. 교만ㆍ질투ㆍ탐욕ㆍ분노ㆍ식탐ㆍ음란ㆍ나태의 인간을 둘러싼 7가지 병든 마음과, 이를 치유하는 겸손ㆍ사랑ㆍ관용ㆍ인내ㆍ절제ㆍ정결ㆍ근면의 7가지 처방. 아리스토텔레스ㆍ소크라테스ㆍ세네카ㆍ아우구스티노ㆍ프란치스코 등 서양 성인들의 잠언부터 《성경》 《이솝 우화》, 유가 경전과 중국 고전까지.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일화와 예시로 풀어내 천주교 신앙이 동양 사회에 스며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책.
“서양의 천주교와 동양의 유학이 만나 탄생한 인생 수양서”
사도세자가 읽고 이익과 정약용을 서학으로 이끈 《칠극》,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번역과 해설로 만나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서학(西學) 열풍을 불러일으킨 책이 있다. 조선 후기 명나라를 통해 조선에 전래되어 수많은 학자들을 감응케 하고 천주교에 귀의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칠극(七克)》이다. ‘칠극’은 7가지 죄종(罪宗)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뜻이다.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인간의 7가지 마음과 이를 극복하는 7자지 덕행(德行)을 담은 책이다.
저자 판토하(Diego de Pantoja)는 스페인 선교사이다. 동방 선교의 꿈을 안고 1601년 명나라에 들어온 그는 천주교 박해로 추방되기 전까지 19년간 중국에 머물면서 전교 활동에 헌신하는데 《칠극》(1614년)의 집필은 그 활동의 일환이었다. 정민 교수가 이 책을 접한 것은 우연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천주교 관련 문헌을 들여다보다가, 뜻밖에 이 책이 조선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혔고 그 영향과 파급력이 상당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칠극》의 원문을 구해 살펴보며 더욱 놀랐던 것은 다산이 제자들에게 준 가르침에서 이 책의 구절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후 잠언풍으로 이어지며 마음을 사로잡는 가르침에 매료된 정민 교수가 《논어》의 7배나 되는 방대한 작업을 시작한 계기였다.
《칠극》은 7가지 갈래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7가지 마음의 병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7가지 해법을 이야기한다. ‘교만’에 맞서는 ‘겸손’, ‘질투’를 이기는 ‘사랑’, ‘탐욕’을 없애는 ‘관용’, ‘분노’를 가라앉히는 ‘인내’, ‘식탐’을 누르는 ‘절제’, ‘음란’의 불길을 식히는 ‘정결’, ‘나태’를 깨우는 ‘근면’이 그것이다. 마치 증세에 따라 처방약을 내놓듯이, 단계별로 죄종의 성질과 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다양한 일화와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일화와 예시로 풀어내
천주교 신앙이 동양 사회에 스며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책
이 책이 동양 사회의 서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었던 데에는 특유의 서술 방식에 있다. 판토하는 《성경》의 내용과 개념들을 유가적 술어를 빌려 서술했다. 신유학의 사단칠정론 같은 윤리학의 기본 범주와 연결함으로써, 천주교의 수양 및 윤리서가 동양의 유교적 지식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접속되는 통로를 만든 것이다.
판토하는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베르나르도 등 서양 중세 성인들을 비롯해, 세네카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잠언과 일화, 나아가 《이솝 우화》와 중국 고전까지 두루 인용함으로써 친밀도를 높였다. 교리 전파라기보다는 일종의 ‘서양인 수양서’ 같은 느낌을 준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매 단락의 이야기가 주는 흥미와 화법에 빠져드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천주교 신앙의 얼개가 내재화되어 갔다. 또한 기존의 《논어》, 《맹자》 등이 어록을 순서 없이 나열한 데 비해, 《칠극》은 7가지 죄종과 이를 극복하는 단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편집의 탁월성과 신선함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강력한 흡인력으로 간행 직후부터 중국 사대부들의 극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판토하를 ‘위대한 한학가(漢學家)’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칠극》은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처음 조선에 이 책이 들어왔을 때 대학자 성호 이익은 “유가의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가르침과 다를 게 없고, 수양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를 높이 평가했다. 남인 학맥의 큰 스승이던 이익의 이 같은 인가가 있자 그의 후학들이 뒤를 따랐고, 이후 《칠극》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천주학과 접속하는 유력한 통로 역할을 했다. 18세기 후반, 조선에 천주학이 들어온 바탕에는 그 이전에 들어와 꾸준히 읽혀온 이 책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다.
《칠극》을 통해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조선 최초의 인물은 이익의 제자였던 홍유한(洪儒漢)이다. 그는 평생 ‘칠극’을 실천했고 이를 추종했던 남인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산 정약용에게도 《칠극》은 생애 전반을 함께한 책이었다. 그는 〈선중씨묘지명(先仲氏墓誌銘)〉에서 《칠극》 등의 서학서를 빌려 탐독했다고 고백했는데, 실제로 〈취몽재기(醉夢齋記)〉, 〈두 아들에게 써준 가계〔示二子家誡〕〉 등 많은 글에서 《칠극》의 내용이 보인다. 사도세자는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 서문에서 자신이 읽고 답답한 마음을 풀었던 93종의 서책 목록을 나열했는데 놀랍게도 《칠극》이 포함되어 있다. 천주교와 무관한 연암 박지원이나 조선 후기 다른 문장가의 글에서도 《칠극》에서 끌어온 비유나 표현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 책이 신앙 차원을 떠나 일종의 수양서나 지혜문학의 일종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식탐, 음란, 나태의 시대에 다시 《칠극》을 묻는다
인간의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7가지 성찰
《칠극》이 이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데에는 무엇보다 책 속의 가르침이 주는 보편적 공감력 때문이다. “훌륭한 이치와 오묘한 뜻이 마음을 깨어나게 하고 눈을 열어준다”(양정균, 명나라 학자), “책 속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뼈를 찌르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음에 콕콕 박혀 통렬하고 절실하다”(영렴지, 근대 지식인),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읽어보면 정신을 놀래고 신묘한 맛이 무궁하다”(방호, 역사학자) 등 학자들의 찬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책의 내용은 현대인이 일반적인 수양서로 읽더라도 큰 일깨움을 준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은 왜 고통스럽고, 어떻게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바른 삶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욕망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해치는가?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등 우리가 갖는 수많은 물음에 궁극적 해답을 제시해줄, 충분히 설득력 있고 여전히 유효한 보배로운 내용들이 책 전체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의 불화는 깊어지고, 사람 간 단절의 벽은 점점 높아만 간다. 물질의 삶이 나아지는데 정신의 풍경은 점점 더 황폐해졌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바른 삶의 길을 찾기 위한 깊은 성찰이다. 책의 각 항목에 따라 자신의 삶을 투영해 읽으면, 몽롱하던 정신이 화들짝 돌아오고, 방향을 놓쳐 비틀대던 발끝에 힘이 생긴다. 여기에 우리 옛 신앙 선조들의 신심을 겹쳐 읽으면, 더 이상 이 책은 낡고 해묵은 가르침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판토하
Diego de Pantoja
스페인 선교사로 중국 이름은 방적아(龐迪我), 자는 순양(順陽)이다. 1571년 마드리드 인근의 발데모로에서 태어나 1589년 톨레도의 예수회에 가입했다. 27세 때인 1596년 동방 선교의 꿈을 안고 리스본을 떠나 인도, 마카오를 거쳐 1601년 북경에 도착했다. 명나라 신종을 알현한 후 자주 궁중에 들어가 악사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궁내 관인이나 시종들과 친교를 맺었다. 1616년 중국의 천주교에 대한 첫 공식 박해로 기록되는 남경교난이 일어나면서 마카오로 추방당한 후 그곳에서 1618년 47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판토하는 탁월한 중국어 문장 능력과 식견으로 여러 편의 한문으로 된 저술을 남겼는데, 그중 1614년에 집필한 《칠극》(총7권)을 통해 ‘위대한 한학가(漢學家)’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솝 우화》뿐 아니라 《성경》과 서양 철학자, 현인, 교부, 성인들의 어록을 소개함으로써, 서구 문화에 대한 중국인의 이해도를 높이고 거부감을 없애 천주교 신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옮긴이 정민
‘다함이 없는 보물’ 같은 한문학 문헌들에 담긴 전통의 가치와 멋을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온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며 옛글 속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우리 사회에 전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다룬 《비슷한 것은 가짜다》《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상두지》《다산과 강진 용혈》《나는 나다》《열여덟 살 이덕무》《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미쳐야 미친다》《파란》 등을 썼다. 또 청언소품(淸言小品)에 관심을 가져 《일침》《조심》《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석복》《습정》을 펴냈다. 이 밖에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집대성한 《한국의 다서》《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와 산문집 《체수유병집-글밭의 이삭줍기》《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