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주제로서의 무신론』은 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세 개의 부로 나누어 주요 철학, 신학 사상을 세부적으로 정리하고 살펴봄으로써 무신론 현상을 분석하고 정의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신론이 오히려 신앙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하였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의 풍조나 경향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신앙을 주체적으로 의식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또한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전망을 살펴보며 제기되는 의문을 통해 무신론을 통해 우리 신앙과 신관(神觀)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신학을 공부하기에 앞서 필수적인 상식과 교양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이 지닌 목표라 할 수 있다.
[책속에서]
파스칼은 확실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결단하는 것이며, 이 결단은 늘 불확실성에 예속되어 있다고 역설하였다. 신의 존재 혹은 부재에 관한 물음에서도 파스칼에게 관건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결단이었다. 신앙의 결단은 합리적 증명이나 반증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심층에서, 마음에서, 충동과 감정, 애착과 혐오가 함께 얽혀 작용하고 열정이 이성에게 영향을 주고 심지어는 이성을 봉쇄할 수도 있는 그런 가운데서 내려진다. 파스칼은 인간의 근본적인 모순과 불안정으로 인해 확실성의 기반으로서의 자기의식에 대하여 동조할 수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유의 확실성으로부터 신(神)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신(神)으로부터 자기 확실성에 이르는 길이었다.
― 28p, ‘제1부 종교비판의 확대와 심화 - 제1장 근대의 출범(데카르트)’ 중에서
계몽은 ‘비판적 이성의 빛’으로 사물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유와 책임의 빛’ 안에서 주관을 정립하는 것도 포함하였다. 그 목표는 인간성, 곧 휴머니즘의 촉진(Herder)이었다. 이제 계몽은 시대의 변화와 쇄신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과정으로서, 그리고 세상을 어둠과 몽매로부터 진보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과정으로서 인식되고 추진되었다. ‘계몽’은 시대를 가름하는 기준 개념이 되었고, 지역과 종교에 따라 그리고 방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전 유럽의 “문화혁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계몽주의의 일반적 표지로서 우리는 이성, 비판, 자유, 개인, 내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은 분리하여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로 상호 내적으로 연계되어 있지만, 편의상 그에 따라 계몽주의의 양상을 그리고자 한다.
― 37p, ‘제1부 종교비판의 확대와 심화 - 제2장 종교-윤리(계몽주의)’ 중에서
성경의 계시는 인간의 투영을 배제하지 않고 포괄한다.356예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일에 함께 관계하고 있으며, 그것 없이는 자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요한 6,66; 마르 6,5 참조). 여기서 한 편은 다른 편 없이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의 계시도 일어나지 않는다! 계시가 발생하는 곳에는 언제나 육신이, 즉 인간적인 상과 개념이 그리고 상상이 함께 한다. 계시는 항상 그 계시를 수용하는 인간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인간은 하느님을 통해 소망을 투영한다. 하느님 상은 저마다 인간 상황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인간이 그리는 하느님 위에는 항상 인간의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 있다. 인간에게 감지되는 실재가 모두 인간의 시각을 통해 채색되듯이, 하느님의 실재도 마찬가지다. 물론 인간의 상상이 하느님을 앞섬으로써 하느님을 가릴 위험이 늘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하느님을 인간의 척도에 따라 생각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하느님이지 인간이 아니다.
― 219p, ‘제1부 종교비판의 확대와 심화 - 제7장 종교 - 심리학(프로이트)’ 중에서
무신론적 기후 앞에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말한다고 하면서 신학 자체가 무신론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일종의 무장해제일 뿐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대한 변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한 주장이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세속적 기후를 인정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학과 세속적 문화의 구별을 없애는 걸 의미할 수는 없다. 하느님이 인간의 자의식, 윤리의식, 종교의식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인간학과 동일시되고 인간학의 특수 형태로 자처하면서 하느님에 대해서는 다만 기능과 암호의 성격만을 말하는 그 같은 신학은 정작 인간과 동료 연대성의 절대적 근거요 지극히 깊은 신비이며 실제로 자유롭고 뛰어난 상대방인 하느님을 희생시키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구해 보려는 모순을 안게 된다.
― 245~246p, ‘제2부 신학계의 대응 - 제1장 개신교 신학’ 중에서
라너는 하느님이 인간의 본성에 선행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긍정하고 수용한다는 사실을 인간의 주체성 안에서 보고자 한 것이었다. 이러한 기획은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을 불러왔다. 인간학적 바탕은 라너의 철학 및 신학의 전체입장에 있어 기반을 이룬다. “늘 이미 인간에 관한 그 무엇을 말하지 않고는” 하느님에 관하여도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신학의 장소는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라너의 생각은 근대의 무신론과 부정신학을 분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하느님을 세계 내 다른 많은 원인과 병존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나 객관 대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근대의 인간학적 전환을 중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이기 때문이다.
라너는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을 지니고 있으며, 경험하는 세계의 모든 유한을 넘어 무한을 향해,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초월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혜로운 계시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가능성을 이미 자신 안에 지니고 사는 것이다.
― 260~261p, ‘제2부 신학계의 대응 - 제2장 가톨릭 신학’ 중에서
부정의 길은 긍정의 길과 함께 유일하고 동일한 하느님을 인식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하느님의 초대 방식이다. 그것은 일부 종교인의 광신적 신앙과 기복적 호기심을 염려하면서, 그리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이 정직하게 체험하는 두려움을 염두에 두고서 의도적으로 신 체험의 이면을 강조함으로써 교정을 가하는 신학의 길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에 관한 통찰이다. 부정신학은 올바른 신앙으로 이끈다. 하느님이 숨어계신다는 말은 하느님을 임의로 조종하려는 이들이 함부로 들어가 능욕하지 못하게 문을 지키는 보초 역을 수행한다. 그러기에 그것은 견제의 말인 동시 은총의 말이다. 그것이 견제의 말인 까닭은 인간이 하느님을 임의로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단호히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은폐성’은 하느님처럼 되려는(창세 3,5 참조) 인간의 불손을 견제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선행과 친절 그리고 은총의 언어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은폐성은 인간 자신의 실적을 통한 구원의 경주를 만류하고 복음과 은총에 기대어 자유로울 것을 권고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실이나 공허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반대로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 충만을 소망하는 말, 형언키 어려운 하느님이 밝히 드러나도록 돕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을 좌절하게 하는 아득한 금령이 아니라, 자애 넘치게 다가와 가슴 떨리게 자극하는 하느님의 신비를 가리킨다. 신약성경은 하느님의 은폐성을 사랑의 발로라고 정의한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머리말 4
제1부 종교비판의 확대와 심화
제1장 | 근대의 출범(데카르트) 16
1. 확실성의 추구 17
2. 확실성의 확립 19
3. 검토와 성찰 23
1) 방법적 회의 23
2)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25
제2장 | 종교 – 윤리(계몽주의) 30
1. 계몽주의의 개념과 표지 31
1) 계몽의 철학사 31
2) 근대의 계몽사조 34
3) 계몽주의의 표지 36
2. 계몽주의와 신학의 갈등 42
1) 계시 – 자연종교 43
2) 성경 - 역사 비평적 연구 45
3) 유신론(有神論) - 이신론(理神論) 49
3. 계몽주의의 완성 52
4. 요청되는 하느님(칸트) 58
5. 윤리의 보루로서의 하느님 63
6. 검토와 성찰 66
1) 계몽의 계몽? 66
2) 실재의 단일성과 차원의 다양성 69
제3장 | 종교 – 철학(헤겔) 72
1. 이원론에 관한 고심 73
2. 세계 안의 하느님 76
3. 역사 안의 하느님 79
4. 만유재신론(萬有在神論) 82
5. 검토와 성찰 85
1) 근대의 완성? 85
2) 헤겔 우파 88
3) 실존주의와 역사주의 92
4) 키르케고르 95
5) 헤겔 좌파(청년 헤겔파) 100
제4장 | 종교 – 인간학(포이어바흐) 106
1. 관념론을 버리고 감각 현실로 108
2. 인간의 해방 111
3. 신앙의 원리와 속성 114
4. 인간신론 116
제5장 | 종교 – 사회·정치(마르크스) 119
1. 관념론에서 물질주의로 120
2. 종교적 소외의 발생 125
3. 종교적 소외의 극복 126
4. 세계관이 된 마르크스주의(엥겔스, 레닌, 스탈린) 129
5. 검토와 성찰 133
1) 과학적인 분석? 133
2) 완성된 자연주의? 135
3) 종교의 소멸? 138
4) 예리하고 올바른 관찰? 140
5) 마르크스주의와 무신론 143
6) 평화적 경쟁 146
제6장 | 종교 – 인본주의(니체) 149
1. 반 형이상학 151
2. 반 도덕 157
3. 반 그리스도교 164
4. 니체의 반전 171
5. 검토와 성찰 177
1) 의문부호? 177
2) 신의 죽음? 182
3) 휴머니즘? 185
4) 양자택일? 190
제7장 | 종교 – 심리학(프로이트) 197
1. 무의식과 꿈 198
2. 종교의 기원 201
3. 종교의 정체 205
4. 검토와 성찰 207
1) 투사? 207
2) 성경의 실상 212
3) 종교의 기원? 220
4) 유아기의 성욕? 221
5) 심리학과 신학 223
제8장 | 제1부의 요약 226
제2부 신학계의 대응
제1장 | 개신교 신학 235
1. 일반 흐름 235
2. 성서적 신앙 238
3. 사신신학 242
4. 딜레마 246
제2장 | 가톨릭 신학 249
1. 일반 흐름 249
2. 부정신학 253
3. 인간학적 전환 256
1) 신학의 장으로서의 인간학 257
2) 무신론자들의 함축적 유신론 261
3) 탓 없는 무신론 267
제3장 | 제2부의 요약 269
제3부 무신론의 온상인 고통, 그리고 하느님의 은폐성
제1장 | 세상의 고통, ‘무신론의 바위’ 274
1. 변신론 276
2. 범죄사화의 진의 279
3. 그리스도인의 고백 281
제2장 | 부정신학, ‘하느님의 은폐성’ 285
1. 부정신학의 전통 287
1) 부정신학의 발원과 전개 287
2) 동양의 ‘개오’(開悟) 294
2. 계시의 실상 297
3. 현대신학의 이해 301
1) 카를 바르트(1886-1968) 301
2) 칼 라너(1904-1984) 304
4. 종언 307
맺음말 312
참고 문헌 316
글쓴이 배영호
가톨릭대학교, 인스브루크 대학교에서 공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효명고등학교 교장, 평촌ㆍ부곡동ㆍ분당 성 마태오 본당 주임 역임.
| 저 서 | 『신학의 주제로서의 맑스주의』(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역 서 | 『세계관과 신학』(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고통이라는 걸림돌』(바오로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