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지금, 여기'에 계신 것이 아니라 저 멀리 떨어져 계신 분, 죽음 뒤에 만날 분으로 여긴다면 굳이 성경을 되풀이 읽고 묵상할 필요가 없다.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 길 위에 서 있는 것이고,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오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은 올바른 자리에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한 번에 끝나지도 않고, 확정지을 수 없으니, 각자의 구체적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지금 우리 삶의 자리에서 성경의 메시지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해석이 필요하다 .
이것이 '사도의 글을 해석한 하나의 연습인 ' 이 책을 읽는 이유다.
복음을 새롭게 살기 위해서는 '늘 반복되는 일상의 한계를 끝끝내 살아내는 사람의 일관된 사유와 성찰'을 해야 한다.
'이야기 1'의 데살로니카 전서 4장 13-18절의 글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죽는 것이 당연하고, 당연한 만큼 일상적이며, 그럼에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것에 더 열심이어서 예수님의 재림이 지금 당장 실현되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는 우리와 달리, 데살로니카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왔다고, 그 재림 안에서 부활의 약속이 곧 드러나리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믿음의 이름으로 미래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을 신앙'이라고 착각하는 대신 죽음 이후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을 억지로 채우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비어 있는 자리 안에서도 예수님의 현존을 믿으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 신앙이고, 내일을 두려워하기보다 오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신앙인이라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부활의 시작이라고 말하기 위해 바오로는 이 서간을 썼다.
이렇게 죽음,기도, 의화, 자유, 세계, 종말 등 열 꼭지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번역된 성경으로 놓치지 쉬운 언어들의 숨은 뜻을 그리스어, 히브리어 원어를 풀어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맞게 해석해 준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을 만한 책이다.
기억하고 싶은 몇 구절을 적어본다. 괄호 안은 쪽수이다.
-빛의 자녀란 어둠을 몰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다(38)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통해 닮고자 한 것은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죽음이다(64)
-다른 이들의 삶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 성경 공부와 선포는, 어느새 자신의 지적 이기심과 욕망, 체면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69)
-율법은 실천하는 이의 만족을 위한 것이지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탱하거나 회복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바오로의 판단이다(80)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히 누군가를 '대신'한 죽음이라기보다, 당신 삶 전체를 관통한 순종과 자기 내어줌의 완성이었다(82)
-믿음은 온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복을 받는 존재임을 깨달아 가는 자기 인식의 과정이다(84)
-유다인들이 찾는 것에도,그리스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도 속하지 않는 십자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다.'걸림돌'이고 '어리석음'인 십자가는 현실 너머의 공허한 선포가 아니었다.(94)
-그리스도인의 세상은 견디고 참아 내며 언젠가는 올 구원을 기다리는 수련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구원이 시작된 기쁘고 즐거운 삶의 공간이다(98)
-감옥이라는 현실 한가운데서, 바오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첫 말은 원망이 아니라 감사다(107)
-'형제애'란 아름다운 단어가 아니라 고통을 동반하는 결단이다.(121)
-결국 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윤리적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세계를 더는 죄의 언어로만 읽지 않는 일이다(132)
-바오로에게 종말은 공포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의 삶을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더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초대였다.(161)
-'영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본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169)\
-흙으로 빚어진 존재인 아담을 영적인 것과 연결하는 것, 이것이 바오로의 대담하고도 창조적인 해석이다(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