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른 기다림의 편지를 읽다.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
올해들어 두 세달 간격으로 폭풍우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B자매의 무례함이 나를 세차게 긁어 감정이 휘몰아치고 나면 후회와 연민의 마음으로 감실앞에 머문다. ’도대체 어디까지 참아야하고 어디까지 당해야 하는지‘ 주님께 하소연하다가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주님께 모든 것을 봉헌하고 화해와 평화의 자리로 돌아간다. 얼마 뒤에 다시 그 걸림돌에 넘어지고 같은 과정이 반복되곤 하였다. 거짓 평화의 소용돌이라고나 할까?
지난달에도 가을에 접어들며 간신히 눌러두었던 마음이 시끄러워져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즈음 4주간의 대림묵상글을 묶은 루카 신부님의 책이 나왔다. 우리를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이끄시려는 초대였다.
루카 신부님의 창세기 연수와 사도행전 강의를 들으며 성경 말씀을 공부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묵상으로 이끌어 주시는 체험을 하며 평소에 존경하고 있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지러운 마음에 갇혀 책을 받아 들고도 첫장을 열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내 안에 뿌리깊은 미움의 감정. 왜 나는 그것에 그리도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자책하게 되는 마음. 조금 무심해지려 애써도 벌렁거리는 심장. 모든 것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부글부글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끌어 안고 저녁기도를 하다가 매일미사 책 아래에 깔려있던 새 책이 눈에 들어왔다. 대림초가 이미 다 타고 밑둥만 남은 초 사진이 앞표지였다. 네개의 초 모두 불을 밝히고 있는 촛불 사진이 눈에 들어오며 내 마음이 책에 가 닿았다. ‘평화’.
한편 한편의 글이 모두 일상에서 말씀을 이끌어내는 깊은 묵상이어서 단숨에 읽기엔 감정이 벅차오르는 글들이었다. 그러나 신자와의 잊지못할 만남, 신학생 시절의 에피소드등을 통해 묵상을 끌어낸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서 16편을 순식간에 읽어 내렸다. 마치 지금 여기에서 나를 위해 말씀을 나눠주시는 것처럼, 딱 내게 필요한 글들이었다. 많이 울었다. 주님께 부끄럽고 죄송스러워졌다. 이토록 부족한 자녀를 위로하시려는 사랑의 돌봄이 느껴져서 책을 덮고도 더 울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림 1주간부터 4주간까지의 복음. 그 말씀들을 각기 4가지 시선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주간마다 엮어내었다. 희망속에서 깨어 기다리기: 자비의 품으로 회개하기: 가시 속에 피어나는 장미의 기쁨: 불가능의 자리에서 이루시는 하느님의 구원.
주님을 향한 첫사랑부터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사랑의 일상이야기가 각 나눔마다 담겨져 있다. 마치 나의 일상에서의 버걱거림이 말씀으로 풀어질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되리라는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평소 책을 읽고 하던대로 몇몇 구절을 필사해 보았다. 더 새기고 싶은 부분은 포스트잇에 적어 책상 위 액자 받침에 붙여 두었다. 내게 더 특별했던 몇 부분을 나누고 싶다.
”평화는 상대를 제압하는데서 오지 않고, 내 안의 칼을 내려놓는 수고 끝에 찾아오는 선물“
“깨어 있음이란 내 마음에 언제 빗장이 걸리는지 알아차리는 일”
“진정한 회개는 한순간의 결심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변화된 마음과 생각을 날마다 자기 몸에 새겨 가는 과정”
“회개는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죽는 날까지 주님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 입니다.”
“농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뒤 하늘을 바라보며 생명의 때를 맡깁니다.”
“환희의 신비는 모든 문제가 해결 된 뒤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거센 풍랑이 계속 되는 한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 할 때 선물처럼 피어나는 은총 입니다.”
묵상글 들을 읽으며 이분의 삶이 기도일 뿐만 아니라 마라톤이고 농부이고 무엇보다도 사랑이고 평화임이 내게 스며들었다. 나도 그렇게 일상안 에서 하느님을 알아차리는 백성이고 싶다. 어린 ‘루카’ 신학생과의 약속을 삶으로 사신 눈먼 안토니오할아버지의 긴 기도처럼!